한때 몸 담았던 '42서울'을 떠나보내며


슬랙 공지

드디어 42서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일어나서 이 슬랙 공지를 보곤 '올게 왔구나' 싶었습니다.
공식적으로 공지가 안 되었을 뿐이지 사실은 모두가 예견했었을 것입니다, 예산 상의 문제로 언젠간 문을 닫을거란 미래를요.

나의 42서울

슬랙 공지 슬랙 공지 슬랙 공지

저는 42서울 7기생이었습니다. 이게 원래 프랑스에 본거지를 둔 교육이라 교육생들을 '카뎃(cadet)'이라고 부르는데요, 전 7기 카뎃이었던거죠.
저는 어쩌면 42서울 교육에 있어 가장 전성기인 시절을 한껏 누리고 떠난 배부른 사람입니다.

매달 세전 100만원도 문제없이 받았고, 비록 중간에 철수하긴 했지만 강남역 근처 '서초 클러스터'도 꽤 오랜기간 누렸었고요, 제가 교육을 끝마칠 때도 새로 들어온 뉴비 교육생들이 꽤 있었습니다.
늘 클러스터에 사람은 많았고 배울거리, 놀거리, 이야기할 거리가 가득했습니다. 한창일 때는 그 5층짜리 건물에 200-300명까지도 있었네요. 체류하는 사람 수에 비해 1층 취식 공간이 좁아서 식사 자리를 잡는데 난항을 겪기도 했었죠. 1층에는 제가 좋아하는 '닌텐도 스위치' 기기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마리오카트 경력이 10년이 넘는 저는 다른 교육생들을 농락하며 재미 좀 보기도 했습니다. (유일하게 못 이긴 친구가 있긴합니다... 나중에 다시 한 판 붙으려고요.)

'집현전'이라고 불리는 멋있는 도서관도 있었습니다. 무려 교육생들이 자체적으로 도서 대출/반납 웹 서비스를 제작했었죠. 저도 웹 서비스 개발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한때 잠깐 속해있기도 했습니다. 집현전, 정말 좋은 공간이었는데요, 물론 책에 둘러싸인 그 기분도 좋지만요, 무엇보다 잠을 자기에 아주 적절한 소파가 있었거든요. 하하.
잠을 잔다고하니까 말인데, 저는 클러스터에서 밤을 참 많이 보냈습니다. 내내 깨어있기도 해보고 새벽에 지쳐 쓰러져서 대충 의자나 소파에서 자곤 했습니다. 그때는 20대 초반이었거든요, 어려서 가능했던 것도 같네요. 지금은 그렇게 자주 밤은 못 샐 것 같아요. 같이 지내는 분들 중 제가 가장 어린 축에 속했던지라 다들 저보고 '어려서 가능한거다'라고 한마디씩 하셨었는데 정말이네요...

제 입으로 말하기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참 사랑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관심 있는 건 확실히 알고 그렇지 않은 건 확실히 모르는데 그런 점 때문에 별난 사람이라는 평을 많이 들어왔거든요, 근데 42서울에는 워낙 특이한(?) 사람이 많기도 하고 이런 저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처음으로 나를 숨기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사람들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게 어렵고 무섭고 두려웠던 나머지 공교육에서 이탈해버렸던 사람으로서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저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기억들입니다.

제가 42서울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42서울은, 적어도 제겐 단순한 프로그래밍 교육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일깨워 준 아주 고마운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42서울 덕분에 제겐 나이를 먹어서도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들과 인연들이 가득 생겼습니다.

소중한 것을 떠나보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숨쉬고 있는 것

아직 제가 20대 중반이라 경험이 부족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만, 매번 소중한 것을 떠나보낼 때는 마음이 참 아픕니다.
때로는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좌절하고, 눈물을 훔치게 되기도 하죠.
그렇지만 받아들여야할 것은 받아들여야겠죠.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한낱 힘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수록 더더욱요.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음이 있잖아요. 마치 세대가 대를 거듭하는 것처럼요.

프리즘의 반짝임은 언제나 이곳에

이와 관련해서 제가 참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대사가 있습니다.
바로 '프리즘의 반짝임은 언제나 이곳에'인데요, 작중 캐릭터들은 이 대사를 하면서 늘 가슴 위에 손을 얹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가슴에 손을 얹기도 합니다.)
언뜻 종교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이 대사는 곱씹어보면 곱씹어볼수록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반짝임'이라는 건 불씨와도 같아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는 힘듭니다. (나뭇가지들만 갖고 불을 피운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지만 그것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전파해준다면 시작해 나갈 수 있어요, 물론 그 불씨를 크게 키우는데는 갖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정말 멋있는 부분은,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키워낸 불씨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죽지 않고 내 안에서 살아 숨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내게 손길을 내밀어주었던 그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이 사라지더라도 말이죠.

그러니, 떠나보낸 소중한 존재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으니 우리는 울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겠죠.

비-기술적(Non-technical)인 글이지만...

평소에 이런 인문학적인 생각을 자주해서 혼자 조각글을 이리저리 써보는 편인데 개인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올려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기술과는 거리가 먼 주제라 '프로그래머로서 나 자신을 보이는 블로그'에 이걸 올리는게 맞나 업로드하기 전에 고민을 좀 했습니다.
42서울에서 프로그래밍 역량을 많이 키웠던 것도 사실인지라 그 방면으로 글을 작성할 수도 있었거든요. 이런 개인적인 감정을 솔직히 내비치는게 조금 창피한 일이기도 하고요(나이 먹을 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더군요).

그렇지만, 기술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을 위한 수단 아닙니까.
목적지를 잃은 수단은 더 이상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죠.
그렇게 생각하면 핵폭탄이 처음 개발되었던 그 위험천만한 옛시절이나 AI로 뚱땅뚱땅 여러가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지금이나 여전히 공학자에게 인간미는 필요합니다.
네, 정말로 공학자들에게도 인문학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적어도 저는 기술의 목적지가 '사람'임을 알고 나아가는 인문학적인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네요.

말이 길었습니다.

나의 20대 초반이 찬란하게 빛나도록 도와주었던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지금의 나도 지탱해주고 있는
고맙고 소중해서 절대로 잊고싶지 않은 42서울
안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