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의 편지


친구와 주문한 치즈버거 세트 햄버거 가게에서 받은 편지

안녕하세요, 김연하입니다.
누구냐고요? 그냥 무직백수 대학생입니다. 4-1학기 재학 중이에요.

요즘 세상에 웬 편지? 그것도 인터넷에? 뭐 이런 이상한 글이 있나 싶으실 수도 있을 텐데요, 갑작스럽지만 이렇게 매달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상은 딱히 정해져 있진 않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 블로그에 온 익명의 누군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얼마 전, 서울 논현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입니다. 점심 할인가로 정상가보다 1천 원 정도 저렴하게 책정된 치즈버거 세트를 같이 온 친구 것까지 두 세트 주문했는데요, 약 십 분 후 직원분이 음식을 갖다주시면서 웬 코팅된 A5 사이즈 종이 두 장을 저희에게 건네주시더라고요. 이게 뭔가 싶어 들어서 읽어보니 편지였습니다. 저희가 사람이 두 명이라서 저희 각자에게 하나씩 주시기 위해 두 장을 건네주신 거였어요.

뭔가 기분이 오묘했습니다. 보통 ‘햄버거’ 하면 패스트푸드 음식의 대표 주자로 생각되어지지 않나요? 그래서 간편하고 맛있어서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간직하고 있는 음식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새벽의 강남 맥도날드에서 주문한 햄버거 세트가 30초도 안 되어 나온 것이 잊히지 않습니다. 직원분들이 사람이 아니고 기계인가? 의심되었죠… 마치 24시간 가동되고 있는 무한 햄버거 공장 같아 상당히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인식이 무색하게 이렇게 햄버거 세트와 함께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글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좀 감동받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글을 꽤 좋아합니다. 내면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해 나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매체이면서(어디까지나 제 기준에서지만), 그 간소함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인간에게 아주 넓은 심상을 그려주고 무한히 깊은 감정의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랄까요. 공학적으로 말하자면 신호 용량에 비해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이 다른 매체보다 많다
근데 현대인들은 편지를 잘 안 써요. 아쉽습니다. 시대의 변화라곤 하는데, 좀 더 옛 시절에 태어났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적도 있고….

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에게 선물을 줄 일이 있을 때 편지를 같이 주곤 했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이들 중 한 분은 나이가 지긋하셨는데 저에게 편지를 받으시더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내가 누군가와 마지막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게 10년 전인데 이렇게 어린 사람이 나에게 손편지를 줄 줄은 몰랐다"라고 하시면서요. 그때 저도 새삼 놀랐었는데요, 되짚어보니 그간 손편지를 보낸 것에 비해 받아본 적은 거의 없어서 ‘과연 다들 편지를 안 쓰는구나’ 싶었습니다. 다들 이게 부담스러운가? 나만 진심인가? 내가 세상에 못 어울리고 순진하게 구는 건가? 씁쓸하기도 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결국, 저도 편지를 잘 안 쓰게 되었어요. 어찌됐든 저도 남들과 어울려야 하니 다른 사람들—현대인들의 정서에 맞추려고 그런 것도 있고, 저조차도 더 이상 글로 온기를 나눌 만큼 여유가 없어 그런 것도 있습니다. 좋아하던 건데, 현실의 벽에 막혀 결국 못 하게 되다니 좀 슬프게 생각해왔어요…
이런 배경이 있어서 더더욱 불이 붙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불특정 다수에게도 이렇게 편지를 쓰네? 난 생각 못 했던 건데, 좋은 생각 같다! 싶었던 것도 있고,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픈 욕망도 있어 그렇습니다.

저는 정신이 온전할 때면 늘, ‘절대로 인간성을 잃은 사람이 되지는 말자. 인간의 온기와 희망을 잊지 말자’ 하고 다짐하곤 합니다. 제가 제일 경계하는 게 냉소, 비관이에요.
부끄럽지만 저는 어릴 땐 무척 냉소적이었어요. 회색빛 세상에서 혼자 숨 가쁘게 허우적댔던 세월이 참 깁니다. 그 당시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을 몇 번이나 느꼈는지.
살아가는 것의 의미, 생동감, 희망과 같은 것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던 어느 날, 운 좋게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간 몰랐던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금 억울하기도 했어요. 남들은 세상의 이런 면을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살아갈 수 있었던 거구나—하고.
그런데 지난 세월을 뭐 어쩌겠어요. 그것도 이젠 내 일부인데…

아무튼요. 저는 정말로 그때의 경험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어쩌면 그것을 잊지 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씩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해지면 다시끔 어릴 때의 사고 흐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럴 때 가장 도움이 된 것이 글쓰기입니다. 스스로와 내면의 대화를 해보는 게 꽤 좋아요. 재밌기도 하고.
근데 요즘엔 바쁘다는 핑계로 도통 못 했단 말이죠, 언제까지 핑계 댈 건데!!
… 그래서 최소한의 선으로 이 ‘매달 편지 쓰기’를 둔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글쓰기 신봉자가 되었네요.
‘난쏘공’ 조세희 작가님의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 것’ 당부로 이번 달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절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후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자본들은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갑니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전 여러분 세대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싸우지 않는다면 죽어서 지하에 있다가도 제가 싸우러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