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정글 게임테크랩 3기 수료 후기 (1)

나의 마지막 교육기관 '정글 게임테크랩'에서의 일들을 돌아보며

테크랩을 수료한지 두 달이 지나서야 드디어 후기 글을 쓰게 됐네요.
그냥 개인적인 감상과 깨달음이 담긴 회고록 같은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냐, 하면은, 음…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느라’라고 답할 수 있겠네요. 교육 당시 저는 잠을 참 잘 못 잤습니다. 제 인생 통틀어서 이렇게 장기적으로 수면이 부족해진 적은 처음이었네요.
그거 아십니까? 잠이 부족해지면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건 물론이고, 쉽게 우울해져요. 사실 테크랩에 들어가기 전 개인적으로 큰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시기에 따라서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을지도 몰랐을 만큼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잠을 잘 못 자 심신이 피로해질 때가 되면 이 일이 이따금씩 생각나더군요.
거의 뭐 눈물 버튼이었던…^^;;
자랑은 아니지만 이 일도 그렇고, 저 일도 그렇고… 슬프고 속상한 일을 도저히 그냥 보내버릴 수가 없어서 이런저런 것들을 머릿속으로 곱씹고 또 곱씹으며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티를 안 내려고 애쓰긴했습니다만)

교육장 내부
교육장 내부
기숙사에서 교육장으로 걸어가며 본 풍경
매일 아침 기숙사에서 터덜터덜 걸어나와 보았던 풍경

0. 세상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각설하고… 교육 기관 이름이 ‘크래프톤 정글’이죠? 네, 그곳에서 전 말 그대로 ‘세상’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에게 있어 정글 게임테크랩은 마지막 교육기관이 될 것입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사실 테크랩에 입소하기 전 설명회에서 백승현 코치님의 “이곳은 여러분의 마지막 교육기관이어야 합니다"라는 당부의 말을 들었는데요, 공립 학교와 동네 보습학원을 포함해 대학, 42서울까지 여러 교육기관을 거쳐온 제게 그 당부는 꽤나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영원히 교육만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저도 나이를 꽤 먹었습니다… 이젠 진짜 세상에 가치를 창출할 때다.)

그래서 입소하기 전 딱 이 마음가짐을 안고 갔습니다.
‘이곳은 나의 마지막 교육기관이어야만 한다.’

거의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진짜로)

그리고 반년동안 교육을 이수한 후 결과적으로, 정말로 ‘더 이상의 교육기관 없이 나 혼자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엔진에 대한 기초 지식과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컴퓨터공학 전반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논리-통찰과 같은 것.
그리고 뜻밖에도, 그곳에 가면 알게되리라 일말의 기대도 한 적이 없던 ‘나 자신의 특성과 강점’까지 알게되었거든요.

관련된 경험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까합니다.

1. 근사한 세계 (Approximational World)

테크랩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저는 단연 이 강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정도되는 짧은 강의였습니다만, 제게 준 충격은 어마무시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당시 잠이 부족했어서 첫 페이지에 나온 영문 제목이 Approximational World인지 Approximation World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강의가 시작되자, 그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깊은 통찰이 담겨져있어 피곤한 상태에서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임창근 코치님을 존경, 아니 경외하게 된 계기가 된 강의기도 합니다. 정말로, 괜히 시니어인게 아니십니다…

그래서 이 통찰이라는게 뭐냐? 사실 저에게는 이 강의와 별개로 프로그래밍 경험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던 사실—분야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컴퓨터공학은 추상화의 연속이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온 듯한 느낌을 준 깨달음이었죠.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학습속도가 무지 빨라졌습니다.

이 강의에서도 비슷한 급의 충격을 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는 영원히 이 근사한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현상을 관찰해 패턴을 얻어내고 원인을 파악하고, 전제 조건 위에서 파라미터와 수식으로 모델링을 하고, 그렇게 수립한 모델을 이용해 현상을 근사해내는 하나의 큰 흐름. 그리고 그 계산 결과에 대해서도 결국 근사해서 인간에게 전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세상이 발전해간다한들 ‘자원의 무한함’에는 도달할 수 없고, 결국 우리는 영원히 수렴하지 못한 체 그 ‘극한’의 근처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것.

복학 이후 수치해석에 좀더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됐네요. 신호처리, 음향학, 광학 등 여러 과목이 혼재되어 있는 멀티미디어 과목도 재밌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임창근 코치님께서 깨우쳐주시지 않았으면 전 이 과목의 중요성을 모르고 등한시했을거예요.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강의가 ‘대놓고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직격탄이나 다를바 없었어서 그렇지 사실 임창근 코치님께서는 교육과정 내내 저희에게 이 통찰을 일깨워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매주 발표 시간 코치님께서 던지셨던 질문, 메세지 하나하나 되돌아보면 분명 그래요.

고작 한 시간의 강의로 거의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도 받고 감동도 받고…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싶네요. 이 강의를 들은 것만으로도 테크랩 교육을 받으러가길 정말 잘했다싶습니다.

2. Epic Project: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풀어나간다는 것, 그리고 상업성

14주차간의 자체 엔진 제작 프로젝트는 사실 ‘하향식 과제’나 다름 없었습니다. ‘과제 던져주기’라는 측면에선, 지금까지의 교육과 다르다싶은 특별한 점은 없었던 거죠. 뭐 굳이 따지자면 이산적인 성적을 부여하는 Grading제가 아니고 추가 학습 및 구현이 자유롭다… 정도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자체 엔진 제작 프로젝트가 끝나고 EPIC 프로젝트가 시작된 순간 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 당장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상품을 개발하래요. 4명을 팀으로 꾸려 기획부터, 개발까지 전부 알아서.

솔직히 이런 심정이었습니다:
‘예? 아니 저희가요? 얼마 전에 자체 엔진 하나 겨우 개발 성공했는데요???? (황당)’ ….

여기서 가장 힘든 건 구현보다는 오히려 기획 쪽이었습니다. 당장 상용 게임엔진인 Unreal의 Fab Marketplace에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상품을 만들어야했는데, 솔직히 시장에 뭘 내놓는다고 해서 다 팔리진 않잖아요? 우리 코치님들이 최대한 노력 덜 들이고 그럴듯한 교육 성과를 내놓기 위해 겉모습만 대충 그럴듯한 상품에 “어어 그래 잘했어"하고 넘어가주실 분들도 아니시고요.
기획에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일주일. 모든 팀원들이 게임 개발 경험이 충분하지도 않은 상황이라 머리를 싸매고 아무거나 되는대로 던져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지옥의 일주일이었어요 하하

이 과정에서 ‘문제를 직접 정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특히 저희는 ‘상업성’이 충족되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요. 상업성과 학문성의 차이 말인데요, 와, 정말 ‘학교는 안전한 온실이구나’싶더군요.
당장 시장에서의 수요가 없더라도 향후 수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가치가 있고, 당장 시장에 내놓아서 소비자(B 혹은 C 뭐가 됐든)가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있지 않더라도, 비싼 자원으로라도 ‘아무튼 가능’하면 가치가 있고, 심지어 그것마저도 불가하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라는 가능성만 제시하더라도 가치가 있는 세계 말이죠.

전 그런 안전한 세계에서만 살다보니 몰랐습니다.
현실은, 산업은….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묻는 것만 해도 수십가지예요.

  • 지금 당장 수요 있어?
  • 그거 이미 대안책 많은데? 그거보다 나은게 뭔데? (“오컴의 면도날”)
  • 지금 당장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의 비용을 써?
  • 기능에 비해 너무 비싼거 아니야?
  • 출시일자는 이 날로 고정이고 조정 불가. 니네 기한내로 완성할 수 있어?
  • 타협해 타협해 타협해 (무한반복)
  • …

아마 학생 나이대에서는 직접 사업을 꾸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나 생각해봤음직한 주제들입니다. 저는 뭐, 세상에 뭘 내놓거나 기여하긴 커녕 골방에서 혼자 ‘우헤헤 재밌다’하면서 뚱땅뚱땅 키보드나 타닥거리던 사람이었기에….
…. 사실은 누군가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개발자’할거니깐, 이런 건 기획자가 마케터들이 대신 고민해주겠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한게 제일 컸네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근데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새삼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달라졌고 이젠 더 이상 한 명이 하나의 역할만 하지 않는다. 누구나 아이디어와 기획만 있으면 당장 추진해서 툭 내놓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그런 능력은 부가 능력 혹은 특출남으로 취급되는게 아닌, 기본값이 될 것이다.’

왜냐면… 기획이 잡히고 나니 구현 자체는 오히려 꽤 순조로웠거든요. 물론 그것도 어려운 작업이긴 했다만, ‘이미 정의된 문제를 푸는’ 행위는 더 이상 옛날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그 말은 즉슨 내가 아닌 다른 이들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어느때보다 기획력과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되겠죠. (물론 기술력을 고도로 깎아서 구현을 ‘기깔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하면 얘기가 다르긴 하다만)


이어서 계속…

당시 저의 책상 (나중에는 굿즈가 더 늘어남. 이건 초기예요)